서해안을 따라 달리다, 석양이 지는 시화호 방조제에서 오토바이를 멈추고 걸터앉는다. 저기 바다 건너로는 송도의 비죽비죽한 마천루가 보이고, 뒤편으로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간척사업이 진행 되는 곳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책을 꺼내 든다. 여행지에서 혼자 읽는 책은 일상에 파묻혀 있을 때 읽은 책에 비해 훨씬 많은 생각을 낳게 한다. 이번에는 자의가 아니라 타의에 의해 선택된 책이란 점이 맘 한구석을 찝찝하게 하지만.
‘편안함은 사람을 잠들게 합니다.’ 라는 글귀에 시선이 머문다. 나는 항상 편안함을 경원시 하는, 도전의식에 불타는 젊은이를 표방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를 생활의 모토로 하기에 주변인들은 내 생활을 보며 늘 다이나믹하다는 표현을 사용하곤 했다. 그런 말을 칭찬으로 생각하고 내 자랑거리라고 여겼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내가 정말 제대로 고생을 하긴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고생이라고 해봐야 힘들게 열심히 놀았던 기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마침, 방조제 공사현장에서 앳되어 보이는 청년 하나가 파이프를 나르고 있다. 기껏 해야 스물 한 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아이가 돈을 벌려고 저 힘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엄마 용돈이나 받아쓰고, 시간이 나면 이렇게 놀러 나올 궁리만 하는 내가 철부지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나도 벌써 스물다섯. 어른들 말씀처럼 옛날 같았으면 애가 셋일 나이다. 친구들 중에는 벌써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녀석들도 있고, 아예 일찍 사회로 나가 사장님 소리를 듣는 녀석들도 있다. 그런 아이들에 비하면 나는 아직도 고등학생인 것만 같다. 매일 아침 억지로 학교를 가서, 어마어마한 등록금을 여관비 삼아 잠을 청하며, 시험 때 밤새는 것이 벼슬이라고 생각 하면서 하루하루 손꼽아 방학을 기다리는, 고등학생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한심한 중생인가.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꺼내 본적이 있다. 한결같이 “그래도 넌 2년 후면 돈 많이 벌거 아냐” 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그래서 뭐” 라고 반문하고 싶지만, 그네들이 보기에 나는 좋은 대학에 가서 미래가 보장된 성공한 친구이기에 더 이상 대화가 되질 않는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흘러 가다가 어느 순간 사회로 내던져 졌을 때, 내가 제대로 된 어른이 될 수 있을지는 항상 의문이 든다. 책에서“성공은 지위를 크게 하고, 실패는 사람을 크게 한다.” 라는 글귀가 다시 눈에 들어온다. 내 인생에서 실패라 함은, 재수를 시작하면서 맛보았던 패배감 정도가 떠오른다. 그 패배감을 딛고 이를 갈았던 결과로 지금의 학교를 다닐 수 있었지만, 그 이후로 내 삶은 정체가 된 느낌이다. 대박이 터졌던 그해 수능 이후로 딱히 성공이랄 것도, 실패랄 것도 없이 그저 끌려가고만 있다. 이러다 그냥 졸업 하면 그저 그런 어른이 되겠지. 겁이 난다. 지난 여행에서 스친 어떤 이가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는 어른들이 너무 존경스러워.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사람이든, 그 어른은 내가 겪었던 이런 젊은 시절의 고민과 좌절을 맛보고 해쳐 나온 사람들이잖아. 그래서 나는 어른들을 존경할 수밖에 없어” 그 말을 듣고 ‘멋있다!’라는 느낌과 함께, ‘존경받아야하는 이유가 그런 것이라면, 나는 존경받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 씁쓸함이 남았었는데, 또다시 그를 떠 올리게 만든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는 사이에 해가 져 어두컴컴하다. 다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고 길을 나선다. 내 앞으로 끝없이 뻗어 있는 길이 어두컴컴하다. 라이트는 고작 내 앞 몇 미터만을 비출 뿐이다. 지나는 차들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관심도 없이 쌩쌩 달려 나간다. 그래도 그 어두컴컴한 길을 벗어나면 나도 아늑한 숙소에 도착할 거라 생각하며 계속 달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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