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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4.17 첫 op assist
posted by d도리도리b 2011. 4. 17. 17:29

 

"너 지금 어씨를 하는거냐 방해를 하는거냐. 차라리 하질 마!"

1달 반, 이제껏 원내생 생활을 하면서 귀가 따갑게 들어 온 말이다. 처음엔 이런 말을 들으면 의기소침해져서 하루 종일 병원 옥상에 쪼그리고 앉아 멍때리며 시간을 보냈지만, 자꾸 듣다 보니 무던해 진다. 잔소리 하는 선생님들이 그래도 우리에게 뭘 가르쳐 주려고 하시는 사람이란걸 느끼고 나니 더욱 더 무던해 진다.


그런데 치주과 첫날.
여기는 다른과랑 다르다고 한다. 그냥 병풍놀이만 해서는 안되고, 적극적으로 assist를 들어가야 한단다. 그리고 수술 assist도 우리가 하게 된다고 한다. 두려워졌다. 그냥 충치 치료 정도 하는거야 제대로 못해도 치료가 돌아가겠지만, 살을 가르고 뼈에서 피가 흐르는 상태에서 뭔가를 잘못 하면 뭔가 큰 일이 벌어질것만 같았다. 더구나 지금까지 못한다고 잔소리만 듣던 내가 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되질 않았다.

잔뜩 긴장하고 부들부들 떨면서 들어갔지만, 생각보다 분위기가 한산하다. 예의 버릇이 나온다. 뒷짐을 지고 밍기적 밍기적 병풍 놀이. 3시가 지났나? 드디어 op 환자가 왔다. 긴장하며 옆에 서는 순간, 4학년이 자리를 채 간다.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예약 리스트를 보니 이미 큐렛과 op 환자는 끝이 났다. 1시간만 적당히 눈치 봐가면서 개기면 퇴근할 수 있다!

그리고 도착한 환자.
젊은 나이에 앞니가 벌써 다 빠졌거나 root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보철과에서 넘어온 환자였는데, extrusion 어쩌니 하는 말들이 들린다. 불안했다. extrusion? 그럼 이를 통째로 위로 당겨 올린단 얘긴데, 수술로 해야 되는건가? 아냐, 그냥 교정장치 같은걸로 될거야. 내가 수술 assist 같은걸 들어갈 수 있을 리가 없어. 혼자 오만 생각이 다든다.

"발치 kit, op로 준비해 주세요."
아..... 망했다. 이미 아드레날린은 치솟고 있다. 나 때문에 잘못되면 어떡하지 불안한 마음이 든다. 바로 옆 체어에 있는 4학년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지만, 씨익 웃고 만다. 손이 부들부들 떨린다. 뭐 부터 해야 되는지 하나도 생각이 안난다.

일단 op kit을 열고... 그 담엔 뭐 해야 되지?
아, 이거 맨손으로 만지면 안되는건데, 큰일날 뻔 했네.
그래 장갑부터 끼자.
아닌데, 장갑 끼기 전에 뭔가 해야 될 일이 있었던거 같은데,
아... 미치겠다.


환자분은 공포에 질린 내 눈빛을 보고 더 공포에 질린듯 하다. 정말 미안하고 죄송했지만, 거기 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다.

식은 땀이 흐른다. 또 다시 4학년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 또 씨익 웃는다. 그래도 이번엔 내가 빠뜨린걸 챙겨 준다. 휴 다행이다.
준비가 얼추 끝나고 미러를 붙들고 선생님을 기다리며 심호흡을 해 본다. 후~~~~~~~
"상악할 땐 오른손에 미러 왼손에 석션, 하악할 땐 오른손에 석션 왼손에 미러"를 수십번도 더 되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블레이드가 살을 가르고 있다. 다짜고짜 석션을 들이 댄다. 흘러 나오는 모든 피를 다 잡아 주마.. 하며 요리 조리 피해 다닌다. 한참을 그러고 있을 때, 선생님이 물어 보신다.

"3학년이에요?" "네"
"오늘 치주과 첫날이에요?" "네"


올게 왔구나. 또 못한다고 잔소리 하는거겠지. 망했다. 손 바꾸란 얘기 까지 하겠구나.
체념 하고 미러를 놓으려는 순간,

"3학년 중엔 젤 낫네~"


엥? 이게 뭐야.
기대 했던 반응이 아니다. 또 아드레날린이 솟구친다.
지금 이게 비꼬는 말인가. 표정을 스캔한다. 그건 아닌거 같은데.
그러면 잘한단 소린가? 그럴리가 없는데.
또 다시 선생님 표정을 스캔하다 들켰다. 씩 웃어 주신다.
잘한단 소린가보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다시 집중해 본다. 그제서야 지금 뭐 하고 있는 수술인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뼈는 다 드러나 있고, labial쪽은 골을 뜯어내 분쇄까지 된 상태였다.
여유가 생기고 나니, 재미있다. 책에서만 봐 왔던 골이 저렇게 보인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거기에 손을 대고 있다는것도 신기했다.

그렇게 수술이 끝이 나고, 봉합까지 마무리 되었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인데, 왜 그렇게 벌벌 떨었을까 픽 웃음이 나왔다. 선생님이 지나가면서 또 한마디를 더 던져 준다.

"3학년 치고는 꽤 하네? 웬만한 4학년보다 훨씬 나은데?"

오.... 원내생 생활 1달 반만에 처음으로 듣는 칭찬이다. 허리는 잘 펴지지도 않고, 손은 너무 힘을 주고 있어서 부들부들 떨리고, 옷몸이 쑤셔 왔지만, 괜시리 입가에 웃음이 걸린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병원에 와서 처음으로 재미 있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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