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d도리도리b 2012. 5. 10. 21:23

앞니가 부러져 영구가 되어서 찾아 온 친구. 쉽지 않았다. 손을 쉴새 없이 놀렸고 두명의 어시스트가 붙어서 도와주었음에도 불구하고 2시간이 꼬박 걸려서야 치료가 끝났다. 결과물도 그리 썩 맘에 들지는 않았다. 동기들은 어떻게 이렇게 하냐며 추켜 세워 주었지만, 내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결과물을 앞니에다 붙인 친구를 마주보고 같이 밥을 먹자니 부끄럽고 미안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밥을 먹다 말고 갑자기 이 녀석이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신기하긴 한가보지? 결과물을 어딘가로 보낸다. 뭔가 해서 들여다 봤더니 부모님께 치료 전후라며 사진을 전송하고 있다. 썩 만족한 눈치다. 유능한 친구가 한 거라고 자랑까지 덧붙인다. 아쉽게도 다음 환자 때문에 부모님의 답장은 보질 못했지만, 기분이 참 묘했다.


글쎄, 그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단순히 자랑할 수 있는 친구가 된 것이 행복한 것 같기도 하고. 내 변변찮은 재주로 주변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거에 도리어 내가 행복해진 것 같기도 하고.




오후 스케쥴을 확인해 보니, 일정이 더블부킹이다. 


하나는 고작 10분짜리 교수님 어시스트.
하나는 기구 마감시간을 항상 넘어서 오시는 내 환자분 예약 이었다. 


잠깐 고민했지만, 또 시간에 쫓겨 스트레스 받을 생각을 하니 다른 일정을 들어가는게 낫겠다 싶어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내세워 환자분 약속을 변경해 드렸다. 미안하고 또 죄송했다. 덕분에 오후는 무난하게 넘어가는가 싶었다. 


그런데 왠걸. 갑자기 진료실에서 온 전화. "환자분 오셨습니다". 


뭐지?


내려가보니 바로 그 아주머니였다. 뭔가 잘못된게 아닌가 싶었지만 최대한 태연한척 다가갔다. 갑자기 날 보더니 반가운 표정으로 큰 봉다리를 건네주신다. 


"너무 고마워서 먹을거좀 싸왔어요. 혼자 살면서 밥도 잘 못 먹고 다니는거 같던데 좀 챙겨 먹고 거기 노란건 꼭 전자렌지에 데워 먹어요~"


멍.... 해져서 바라보고 있으니 활짝 웃으시면서 한마디 덧붙이신다.
"이제 웃어도 까만거 안 보이죠? 너무 고마워요"


아. 정말 할말이 없어졌다. 거짓말 까지 해가며 약속을 취소했는데 일부러 이까지 오셔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수도 없이 절을 하며 배웅해 드리고 한동안 멀뚱히 서있었다. 


이런게 치과의사로 사는 행복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그런데 글쓰며 생각해보니 그 봉다리 병원에다 놓고 왔다. 가지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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