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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3.30 교정과 끝.
  2. 2011.03.26 원내생 어시스트
  3. 2010.04.09 구순구개열
posted by d도리도리b 2011. 3. 30. 00:47


1. 지긋지긋한 교정과턴이 끝났다.

2. extremely nonfunction.
병풍도 병풍 나름이지, 이건 당췌 뭘 하는지 알 수도 없고 철사만 뺐다 꼈다 하는걸 하루 종일 지켜 보고 있자니 온몸에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던 나날들이었다. 뭐라도 좀 알고 보자 싶어서 거금 7만원을 들여 산 치과교정학책을 들고 다녀 보기도 했지만, 책을 봐도 까막눈이긴 매 한가지였다. 답답한 마음에 옥상으로 올라가 멍하니 앉아있어 보기도 하지만, 병원내 최하층민이자 불가시천민(不可視賤民, the Invisible)인 원내생1년차 조무래기는 그 마저도 눈치가 보여 마음껏 할 수 없다.

3. Suctionphobia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하는건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4. 눈치는 점점 늘어간다.
서있지만 서있지않은,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을 수 있는 포지션을 기가막히게 찾아가서 짱박혀 있는 스킬이 이젠 마스터에 도달 직전이다. 대충 분위기가 이상하다 싶으면 자리를 피할 줄도 알게 되었다.

5. 말은 점점 없어진다.
하루 종일 할 말이 없다 보니 점점 입이 붙어간다. 우리 끼리는 수신호로 어느정도의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눈짓만으로도 대략 상대방을 파악하는 스킬도 생겨나고 있다. 
오늘 인턴샘이 인상채득이 끝난 환자를 보내고 대기 환자분을 불러다 체어에 앉힌 후 세팅해달라고 하신다. 환자를 보내고 새 환자를 앉혀 놓고 기다리는 동안 생각해보니 나는 말을 한마디로 안하고 손짓으로만 의사전달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라고 생각했을까. 개량한복인지 찜질방 찜복인지 구별도 안되는 이상한 옷을 입은 인간이 허우적대더니 의자를 가리키고 바깥을 가리킨다. 병신인가.

6. 인상채득은 이제 좀 알겠다.
봐도 알 수 없는 교정 과정은 아예 머리에서 지워 버리고 하루 종일 본 뜨는 인턴샘들 옆을 기웃거리며 잡일을 하다 보니 이젠 대충 흉내는 낼 수 있다. 환자가 없을 때 선생님들 몰래 우리 끼리 떠보기도 하면서 임상경험(!)도 꽤 쌓은거 같고.

7. 내일부터는 강남세브란스턴이다.
화창한 점심시간에 버스타고 서울 투어를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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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도리도리b 2011. 3. 26. 04:03


3학년이 된 후,
번지르르한 흰 가운을 입은 후,
병원에 들락거리기 시작한 후,
하루 하루가 고난의 연속이다. 처음엔 별로 하는 일 없이 Observation(이라 쓰고 병풍놀이라 읽는)만 제대로 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그거만큼 쉬운게 어디있냐며 비웃었는데, 하는 일 없다는게 이렇게 힘든건 줄은 정말 몰랐다.

교정과를 돌기 시작한 후 이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높으신 선생님들 옆에 붙어서 아무리 뭘 보려고 해도, 이건 뭐 이빨에다 철사 붙였다 떼었다 하는거 밖에 보이질 않는다. 간혹 교정이 끝나고 브라켓을 떼는 환자는 스케일링을 하기도 하는데, 이때다 싶어 석션 어시스트라도 할라 치면 어느새 위생사분들이 와계신다. 평소에 석션기를 사용해볼 일이 없었떤 나는 석션 한번만 쥐어 봤으면 소원이 없겠네.. 하며 눈치를 보다, 드디어 위생사분이 자리를 비웠다.

좋다. 힘겹게 잡은 석션이니 "입안에 고인 물을 다 빨아 내야겠다!" 라는 심정으로 쇳덩어리를 환자 구강내로 집어 넣으려는 순간, 메탈로 된 석션팁이 혀에 갖다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다. 당황해서 땀이 삐질삐질 난다. 얼른 하늘같은 3년차 선생님의 눈치를 봤더니 쳐져 있던 눈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 계신다. 조땟구나. 하필 그 3년차 선생님은 병원 주변 반경 10 km 내에서 내가 가장 무서워 하는 분이다.

혀에서 가까스로 떼어내고 다시 석션을 잡으려니 손이 덜덜 떨린다. 이번엔 혀에 붙지 않으리라.. 그것만 생각하고 또 들어간다. 이미 내 시야는 석션팁 주변 1cm로 좁아져 있다. 다른건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게 덜덜 떨다 보니 보다못한 선생님이 한마디 하신다. "거기 대고 있으면 뭐 빨리는게 있긴 하냐? 더 깊이 들어와!" 오.. 명령이 떨어졌으니 수행해야 한다. 깊이, 더 깊이, 좀 더 깊이, 환자가 끄윽끄윽하며 괴로워하는듯 하다. 다시 도망 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갖다 대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환자가 괴롭지 않으면서 혀나 점막이 딸려나오지 않는 곳에 있어야겠다고 굳게 혼자 다짐하며 다시 들어간다. 오오오 이번엔 제대로 빨린다. 환자가 끄윽끄윽 거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선생님이 스케일러를 입안에서 빼낸 채 한심하단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계다. "니가 환자 보냐?" 그렇다. 내가 든 석션기가 입을 온통 막고 있어서 도저히 스케일러가 들어갈 곳이 없었다. 부끄러움에 순간 얼굴에 피가 몰리는 것을 느껴졌다. 

결국 난 그자리를 위생사분께 넘겨드렸다...
그리고 그날은 하루 종일 위생사분들을 observation 했다.

에휴.. 이래가지고 치과의사가 될 수 있긴 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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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d도리도리b 2010. 4. 9. 03:52

병리학 시간..

이른바 언청이라고 불리는 구순구개열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었다.

요즘은 학교 다니는게 별로 재미가 없어서 수업 시간엔 엔간하면 잠을 청하는 편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날 따라 수업에 몰입하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징그러운 아기들 사진들과 내가 제대로 공부하지 않아 아직 까막눈일 뿐인 해부학 용어들이 막 스쳐 지나 갔다. 

구순구개열 환자들도.. 요즘은 태어나자 마자 수술을 받고, 몇 차례의 교정 치료와 또 몇 차례의 수술을 받고 나면 정상인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선생님이 하시는 말이 '오히려 구순구개열 환자들은 어릴 때 부터 온갖 시련을 다 겪었기 때문에 커 가면서 남들 보다 심적으로 튼튼하게 자라고, 공부도 잘 할 가능성이 높다' 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수업 막바지에 치료가 거의 끝난 환자들의 사진을 보여 주신다. 치료가 끝났거나 거의 끝나가는 환자들이지만, 약간은 전형적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을 지나가는 누군가가 있었다. 어딘가에서 많이 본 얼굴이었다.

어린 시절, 한 친구녀석이 있었다. 늘 발음이 어눌했고 입은 약간 돌아 간 듯 보여 밉상이었다. 그랬다. 이유 없이 미웠다. 그래서 놀리고 때렸다. 나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그랬던 거라고 애써 변명하지만, 생각할 수록 아주 부끄럽고 추악한 기억이다. 

그래, 그 친구 녀석의 모습이 왠지 그러했다. 아마 그 아이도 태어날 때 그런 결함을 갖고 태어난게 아닐까 하는 조심스레 생각하고 나니 너무나 미안해졌다. 물론 이 병이 아닐 수도 있다. 아니, 아닐것이다. 오히려 십 수년이나 잊고 있다가 장애가 있는 환자의 사진을 보고 그 친구를 떠 올렸다는게 더더욱 미안하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나질 않고, 어디서 뭘 하는지 알 수도 없다. 그 때 내 행동을 사과받을 길 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시간이 흘렀지만 수업시간, 선생님 말씀 처럼 그 때 겪었던 시련을 다 뒤로 하고 어디에서 잘 살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나름의 위안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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