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d도리도리b 2011. 3. 26. 04:03


3학년이 된 후,
번지르르한 흰 가운을 입은 후,
병원에 들락거리기 시작한 후,
하루 하루가 고난의 연속이다. 처음엔 별로 하는 일 없이 Observation(이라 쓰고 병풍놀이라 읽는)만 제대로 하면 된다는 말을 듣고, 그거만큼 쉬운게 어디있냐며 비웃었는데, 하는 일 없다는게 이렇게 힘든건 줄은 정말 몰랐다.

교정과를 돌기 시작한 후 이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높으신 선생님들 옆에 붙어서 아무리 뭘 보려고 해도, 이건 뭐 이빨에다 철사 붙였다 떼었다 하는거 밖에 보이질 않는다. 간혹 교정이 끝나고 브라켓을 떼는 환자는 스케일링을 하기도 하는데, 이때다 싶어 석션 어시스트라도 할라 치면 어느새 위생사분들이 와계신다. 평소에 석션기를 사용해볼 일이 없었떤 나는 석션 한번만 쥐어 봤으면 소원이 없겠네.. 하며 눈치를 보다, 드디어 위생사분이 자리를 비웠다.

좋다. 힘겹게 잡은 석션이니 "입안에 고인 물을 다 빨아 내야겠다!" 라는 심정으로 쇳덩어리를 환자 구강내로 집어 넣으려는 순간, 메탈로 된 석션팁이 혀에 갖다 붙어서 떨어지질 않는다. 당황해서 땀이 삐질삐질 난다. 얼른 하늘같은 3년차 선생님의 눈치를 봤더니 쳐져 있던 눈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가 계신다. 조땟구나. 하필 그 3년차 선생님은 병원 주변 반경 10 km 내에서 내가 가장 무서워 하는 분이다.

혀에서 가까스로 떼어내고 다시 석션을 잡으려니 손이 덜덜 떨린다. 이번엔 혀에 붙지 않으리라.. 그것만 생각하고 또 들어간다. 이미 내 시야는 석션팁 주변 1cm로 좁아져 있다. 다른건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게 덜덜 떨다 보니 보다못한 선생님이 한마디 하신다. "거기 대고 있으면 뭐 빨리는게 있긴 하냐? 더 깊이 들어와!" 오.. 명령이 떨어졌으니 수행해야 한다. 깊이, 더 깊이, 좀 더 깊이, 환자가 끄윽끄윽하며 괴로워하는듯 하다. 다시 도망 나왔다. 도대체 어떻게 갖다 대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환자가 괴롭지 않으면서 혀나 점막이 딸려나오지 않는 곳에 있어야겠다고 굳게 혼자 다짐하며 다시 들어간다. 오오오 이번엔 제대로 빨린다. 환자가 끄윽끄윽 거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선생님이 스케일러를 입안에서 빼낸 채 한심하단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계다. "니가 환자 보냐?" 그렇다. 내가 든 석션기가 입을 온통 막고 있어서 도저히 스케일러가 들어갈 곳이 없었다. 부끄러움에 순간 얼굴에 피가 몰리는 것을 느껴졌다. 

결국 난 그자리를 위생사분께 넘겨드렸다...
그리고 그날은 하루 종일 위생사분들을 observation 했다.

에휴.. 이래가지고 치과의사가 될 수 있긴 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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